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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이모저모

반질반질 나무 표면의 화학

작성자하이브파트너스  조회수1,229 등록일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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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호기심연구소

 

 

반질반질

나무 표면의 화학

 

 

나무는 인류가 사용해온 가장 오래된 에너지원이자 재료입니다.

불을 발견한 인류의 조상은 구하기 쉽고 가공도 편한 나무를 땔감뿐만 아니라

도구로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식기부터 집까지 인류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중요한 재료가 된 나무는

오늘날 친환경 소재로 더욱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목재 표면의 보호막

20세기말 독일 북부 헬름슈테트의 호모 에렉투스 시대 주거지에서 귀중한 유물이 발굴됐습니다. 나무로 만든 사냥용 창입니다. 돌로 만든 석기와 달리 목재는 부식이 빠릅니다. 구석기 시대의 유적에서 좀처럼 목재 유물을 발견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물가의 펄이 공기의 침투를 막아 수십만 년이 지난 후에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이지요.

 

목재는 재료 수급의 용이함과 활용성 면에서 단연 발군의 소재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 어떤 재료보다 물에 약하고 부식이 잘 된다는 게 약점입니다. 충분히 건조되지 않거나 수분을 머금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뒤틀리거나 썩곤 하지요. 이에 따라 사람들은 목재의 짧은 수명을 늘리고 깨끗함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 나무의 표면에 기름이나 식물의 수액 등을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목재의 표면에 도막을 만드는 도장(塗裝)입니다.

2,500년 전 이집트에서는 식물의 씨나 열매에서 짜낸 기름 중에서 건조가 빠른 건성유를 사용해서 나무 제품과 건축물의 표면에 고체막을 형성했다고 하는데요. 아마인유, 대두유, 피마자유, 들기름 등의 건성유는 불포화도가 높은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어 공기 중에서 산소와 반응하며 점차 수지 형태로 굳어 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명품 도장재 ‘옻’

우리나라에서도 천연재료를 이용한 도장법이 발전해왔습니다. 바로 옻나무의 수액을 바르는 ‘옻칠’입니다. 중국이 원산지인 옻나무가 언제 한반도에 유입됐는지는 정확치 않습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옻나무가 자생하는 데다 기원전 청동기 시대의 석관묘에서도 옻칠을 한 칼집과 제기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 전부터 천연도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옻나무의 수액에는 우루시올(Urushiol)이란 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우루시올은 옻나무 수액에 함께 포함되어 있는 락크효소의 작용으로 공기 중의 산소를 흡수하며 검은 수지로 변하는데요. 이 특이한 효소 반응 덕분에 어떤 조건에서도 견고한 내구성과 아름다운 광택을 갖게 된 옻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존하는 목재 도료들 중 가장 훌륭한 마감재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또한 옻칠은 강력한 방수성과 함께 외부 습도의 변화에 따라 일정량의 수분을 흡수 또는 방출하는 특성도 갖고 있는 것으로알려져 있는데요. 옛 사람들이 옻칠을 한 밥그릇에 음식을 담아두면 더 오래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다고 믿은 것도 근거 없는 속설만은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건조되기 전 수액 상태의 우루시올 성분은 알레르기 유발물질이기도 합니다. 일부 특이체질의 사람은 옻나무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옻오름’이라는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산 속에서 옻나무를 보면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방에서는 옻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항균과 구충, 염증개선 등의 약재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청과 들기름

옻칠이 식기, 제기, 가구 같은 생활용품 도장법이라면, 단청(丹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물 도장법입니다. 목조건물이 많은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여러 가지 빛깔과 문양으로 건축물을 장식했는데요. 단청은 단순한 미적 기능뿐만 아니라 나무를 비바람과 병충해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한반도의 주요 건축재인 소나무 특유의 균열을 메우고 결함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30~40년 주기로 새로 단청을 입히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단청의 색조는 전통적인 오행설에 따라 청색, 적색, 황색,백색, 흑색의 기본 채색이 오랫동안 지켜졌는데요.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있었습니다. 신라에서는 성골, 즉 왕궁에서만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검소함을 지향했던 유교의 나라 조선 역시 비싼 광물성 안료가 필요한 오방색은 궁궐과 관아 등의 공공건축물과 사찰, 사당 같은 종교시설 정도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짓는 민간의 살림집은 법적으로 단청이 허용되지 않아 보통 들기름칠 정도로만 마감을 했지요.

반면 한결 자유분방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려시대에는 햇빛을 강하게 받는 기둥과 난간 등은 붉은 색, 그늘진 곳의 추녀나 천장 부분에는 청록색 위주로 채색해 장식의 명도를 높이는 이른바 ‘상록하단’의 채색법이 유행했습니다. 또한 일부 권세가 높은 상류층과 부유한 사찰들은 단청의 재료로 값비싼 옻칠과 금분을 두껍게 바르는 금단청 등을 활용하기도 해 화려함이 대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현대의 목재 도장재는 도막을 형성하는 전색제, 도료의 분산·건조·경화 등의 성질을 향상시키는 부요소, 도료를 칠하기 쉽게 하고 건조하는 동안 증발해 도막에는 남지 않는 용제 등의 성분으로 구성됩니다. 이렇게 3가지 성분으로만 이뤄진 도료가 투명도료, 여기에 색상을 내는 안료가 들어가면 착색도료가 되는데요. 도장재는 주로 용제의 종류에 따라 크게 수성과 유성으로 구분합니다. 일반적으로 수성제품은 유성제품보다 친환경적이지만 도장 기능이 떨어져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유성제품의 경우 기능은 뛰어나지만 용제가 대부분 석유화학제품이기 때문에 환경과 작업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성도료는 기능적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기술개발이, 유성도료는 용제가 없거나 함량을 최소화하는 제품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지금 내 몸을 기대고 있는 책상, 의자, 침대를 가만히 쓰다듬어보세요. 반질반질한 목재 표면의 윤기와 부드러운 촉감 속에서 일상 어디에나 숨어 있는 화학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